Home » 기자수첩 » [기자수첩] ‘국제사회의 규범과 원리’를 읽고(1)

intl-society

‘국제사회의 규범과 원리’는 부산외국어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교수들의 논문이다.
그 중 4개의 논문을 요약해 본다.

‘유교문명권의 국제규범’-예 규범을 중심으로 (권선홍 교수)

유교문명권의 국제관계에 관한 연구는 1930년대 장팅푸(1894~1965)로부터 시작되었다. 페어뱅크는 194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1960년대에 중화세계질서라는 분석틀을 제시하여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기본시각에서 외국학자들은 물론 국내학자들도 서구적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들 모두는 역사적 맥락에서 접근해야 하며 무엇보다 중세문명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느 시대나 사회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듯이 국제관계에서도 일련의 규범이 현실에서 위반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하지만 국제규범이 실제 행위속에서 수시로 위반되더라도 규범의 정당성 자체는 유지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통시대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유교사상 특히 예규범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국가보다는 문명권 차원에서, 근현대적 시각보다 중세적 시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중세유럽에서는 단일한 기독교세계의 단일한 제국이라는 관념이 지배하여 제국은 명분상 ‘신의’에 의한 보편적인 정치체로 존재하였다.
중세의 법은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발견되는 것으로 ‘신’에 의해 주어진 것이었다.
이슬람권에서도 절대신의 법(샤리아)이 국가보다 우선하며 이슬람의 유지가 바로 국가의 기능이었다.
당시 정부의 1차적 목적은 국가보다는 신앙의 방어와 보호였다.

유교사상에서 ‘도’와 ‘리’는 우주만물의 궁극적 본체이자 인륜도덕의 최고 준칙이었다.
그러나 ‘도’나 ‘리’는 추상적이었던만큼 현실의 인간세계에서 구체적인 예규범으로 구현되어져야만 하였다.
예의 기원은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듯 신에대한 제사행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있다.
예는 개인적 차원에서 국가적 차원, 나아가 국제적 차원까지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며 아울러 정치 사회적 위계질서에 따른 다양한 차별적 양상을 지니고 있다.
국가간에 적용되는 예규범에는 상당한 융통성이 이미 내재되어 있다. 예는 개개인이 지켜야할 규범일뿐 아니라 국가의 통치질서이기도 하였다.

성리학은 기존 유교에 도교와 불교의 장점을 결합하여 ‘리’를 우주만물의 근원이라 규정하며 예를 ‘도’ 내지 ‘리’의 구현이라고 하면서 이들 양자와 동일시함으로써 예를 더욱 절대화시켜 나갔다. 이처럼 예는 성리학에서 ‘도’ 내지 ‘리’와 같은 절대성과 보편성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예’는 중화와 이적을 구별하고 문명과 야만을 분별하는 상징이기도 하였다. 이황, 송시열, 유인석이 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예’는 원칙적으로 유교문명권 내에서만 적용되었던 것으로 권역밖의 이적에 대해서는 다만 이를 준용할 따름이지 굳이 엄격하게 적용하려고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교문명권의 사대자소의 예와 관련해 대체로 사대는 ‘국가보전을 위한 현실적인 외교정책’으로 ‘어디까지나 안보를 보장받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것이 국내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라고 하겠다. 즉 해방 이후 사대는 ‘자주적 실리외교’라고 보는 해석이 유행하고 있다.

사대에 대하여 송대의 주자, 명태조 주원장, 명대 정효도의 견해에 따르면 사대자소는 대소 제후국들이 지켜야 하는 당연한 예이자 천리였던 것이다. 물론 한비자 등 비 유가 사상가들은 사대자소를 현실적인 힘의 강약에서 보고 있다. 삼국시대나 고려 때에는 사대가 생존을 위한 수단적 측면이 좀 더 강하였다는 지적도 있으나 이처럼 예규범으로 인식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조선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은 성리학을 철저히 수용하여 한족인 명의 건국이 이적인 원나라를 물리치고 중화의 정통을 회복시킨 것이라 높이 평가하고 명황제를 진주로 존숭하여 중국과의 관계도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상하 존비관계로 차등화하였다.

사대를 행함에 명분론과 현실론의 충돌은 어쩌면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명종 연간에 사헌부는 사대를 행함에 있어 상도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권도를 써서 백성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고려가 송, 금 두나라를 동시에 섬겼던 상황적 실리적 사대관계가 비록 명분상으로는 잘못이 있으나 백성보호라는 기준으로는 훌륭한 계책이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신은 고려의 현실주의적 사대외교를 비판하며 명분론적 원칙을 강조하기도 했다.

사대나 조공문제와 관련하여 이율곡은 누구보다 구체적이고 명쾌한 견해를 제시하였다고 여겨진다. 즉 사대는 상황의 변화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의리와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삼국이나 고려의 사대는 진정한 것이 아니고 조선만이 이를 행하고 있다고 자부하였던 것이다.

유교문명권의 책봉 조공 예규범에 관하여는 하나만 존재하는 천자가 문명권의 여러 국왕들을 책봉해야 하는 것으로 믿었으며 책봉절차를 거쳐야 국왕의 지위가 공인되었다. 한편 조공국들은 책봉을 받음으로써 권력의 정통성을 인정받아 국내정치적 안정과 함께 유교 문명권의 정식 회원국이 됨으로써 대외적 위상을 높이기도 하였다.

중국이 조공국들에게 요구한 것은 그 지역의 습속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신하로서의 분수와 예를 준수하라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이애대해 이율곡도 사대의 예란 성심껏 부지런히 조공을 행하고 각기 그 봉강을 지킬 뿐이라며 이를 벗어나는 일은 사대의 예와는 무관하며 중국이 이런 문제에 개입하는 것도 비례(예가 아님)라고 보았던 것이다.

유교권에서 예냐 아니냐의 여부는 모든 행위의 시시비비와 선악을 판별하는 가치기준이었다. 천자도 스스로 그 모범을 보여야 하였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적어도 유교사상에서 본다면 유교권의 국제관계는 예규범에 근거한 관계가 그 핵심이었다. 이른바 천하라는 큰 나라속에 제후의 나라인 국이 포함되는 즉 단순한 상하라기보다는 대소 상포의 독특한 관계였던 것이다. 유교문명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서구중심주의와 근대지상주의라는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 문명권차원에서 그리고 역사적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무엇보다 유교사상 특히 예규범에 대한 파악이 핵심적이다.

예규범과 실제 역사적 상황은 괴리가 있게 마련이므로 두 상황을 대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밝혀내어 장차 지역협력체로 나아가는 소중한 토대로 적극 계승 발전시켜가야 할 것이다.

Stone Choi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
*